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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21. 18:37 황제를위하여 영화평론

2.6. 연출과정의 진단과 평가
2.6.1. 한계와 문제점
한편의 영화가 머릿속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기획되고 제작되어 극장에 걸 리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은 위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여러 공정과 난관들을 넘 어서야 하는 고된 여정이다. <황제를 위하여>는 시작점부터 여러 한계와 문제 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원작이 가지고 있는 단점 즉, 진부함과 식상한 스토리로 인해 상업적 인 차별성과 신선함을 갖추지 못했고 이를 보완하지 못했다. 따라서 투자단계 에서 소모적인 시간들이 이어지게 되었고 결국 투자가 확정되었어도 투자여건 은 그만큼 열악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중심을 잡고 작품을 이끌고 나갈 주인의 부재였다. 물론 제작자가 기획 을 한 작품이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를 찾고 컨셉을 확립시킬 연출자가 제 작자와 의견 수렴을 이루지 못하고 교체됨으로 작품의 전체적인 방향성에 혼 란들이 가중되었다. 제작자가 아무리 작품의 방향성을 확고히 그리고 있다하 더라도 결국 현장에서 구현시키는 것은 연출자의 몫이다. 뒤늦게 합류한 본 연 출자도 제작자와는 시간에 쫓겨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서로 동상이몽을 꿈꾸 며 나중에 불협화음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셋째, 첫 번째 문제점의 결과였던 열악한 투자여건으로 인해 시나리오를 제 대로 구현할 수 없는 일정과 예산으로 일정 부분 졸속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 었던 촬영과정이다. 스텝과 배우들의 헌신으로 결국 무리한 일정과 예산임에 도 정해진 범위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완성은 되었지만 연출자의 입장에 서 봤을 때 좀 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작품의 퀄리티를 끌어올릴 수도 있었지만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다.
넷째, 결국 이렇게 완성된 결과물은 관객에게 보이기 전 이미 감독과 제작자 그 누구의 비전도 담지 못하고 만족시키지 못한 작품이 되었고 상업적인 계산 을 위해 오로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비주얼에만 몰두하게 되었으며 급기야 회사에서 작품의 편집에 관여를 하면서 관객에게 기본적으로 전달해야 할 스 토리마저 무너져 애매한 주제와 드라마의 작품이 되어버렸다.
앞서 필름누아르라는 장르를 살펴볼 때 수정느와르로 제시했었던 1972년 개 봉작 범죄 느와르 <대부>의 제작과정을 잠깐 살펴보겠다.
제니. M. 존스가 기록한 <대부, 시나리오&제작노트>의 내용을 요약해 보 면, 이 영화의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사의 제작담당 피터 파트는 “<대부>의 제 작과정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체험이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그것에 대 하여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 자체를 회피하고 싶었을 정도로요”라고 영화의 제 작과정에 대해서 회고한 바 있다. 그만큼 제작자로서 제작과정 중에 있었던 마 찰과 어려움들에 대해 토로 한 것이다.
<대부>란 영화의 기획은 <황제를 위하여>처럼 출발부터 여러 가지 난제를 안고 있었다. 당시 파산상태였던 작가 마리오 푸조는 전혀 쓰고 싶지 않은 소재 로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원작을 집필했고 어떠한 감독도(당시 12명의 감독이 대부의 연출을 고사했었다. 당시 무명이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저도 처 음에는 연출제의를 거절했었다) 이탈리아계 마피아들을 미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영화의 연출을 맡으려하지 않았다. 또한 상업적 수익을 전혀 장담할 수 없는 무명의 배우(특히 당시 무명에 가까운 알 파치노의 파격 캐스팅은 유명하 다)들이 대거 캐스팅이 되었고 그나마 주연이었던 말론 브란도는 박스오피스 기록에서는 이미 쇠락기었으며 제작사들에게는 그의 돌출행동 등으로 인해 기피인물로 찍혀있었다. 또한 영화가 크랭크 인 되기 전에 이탈리아계 미국인들 이 영화제작에 대한 반기를 들며 영화제작중단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였다.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악조건들 속에서 끝내 연출을 맡은 프란시스 포드 코 폴라는 결국 이 영화를 세기에 남는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는 눈부신 결과를 만 들어 냈다. “하위문화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스릴, 긴장감 높은 액션과 드라마 등이 흥미진진하게 짜여 져 있는 <대부>의 더욱 중요한 성공요인으로는 뛰어 난 연출적 디테일과 대서사시라는 영역과 가족이라는 친밀한 영역을 동시에 모 두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를 대서사시로 만든 것은 훌륭한 촬영과 빼 어난 연기, 그리고 전후 미국 자본주의의 성장에 대한 냉정한 코멘트들이다” 19)
라고 당대의 평론들은 극찬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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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눈부신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연출자 입장에서 들여 다본다면 위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연출자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작품 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그에 따른 자신의 연출방향과 비전을 확실하게 세워놓 고 초지일관 그것을 관철시키고 작품에 투영시키기 위해 거대한 자본을 앞세 워 압력해오는 스튜디오에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대항하며 연출자로서의 외로운 싸움을 끊임없이 벌여나갔다.
그 과정은 첫 번째, 영화에 배당된 적은 예산에 안주하며 만족하지 않고 작품 의 퀄리티를 위해 끝까지 스튜디오를 설득해 나갔다는 것이다. 스튜디오는 예 산을 줄이기 위해 제작당시(1970년대)를 영화의 시대배경으로 삼으라고 지시 했지만 코폴라 감독은 영화 스토리의 대부분이 1940년대 배경과 밀접하게 연 결되어있다는 것을 이유로 1940년대를 영화의 배경으로 끝까지 밀어붙였다.
만약 1970년대의 배경을 가진 <대부>가 탄생됐었다면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대부>가 가지고 있는 품격과 고전적인 느낌, 당시 이민사회에 대한 리얼한 분위기의 미덕을 결코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로케이션에 대해서도 스튜디오는 예산을 문제로 영화노동조합의 세 력이 막강한 뉴욕이 아닌 다른 도시를 원했다. 하지만 코폴라 감독은 영화를 꼭 뉴욕에서 찍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시대극이고 뉴욕사회의 이민자 모습 과 분위기를 다른 도시에서는 똑같이 살릴 수 없다는 이유였다. 물론 영화적으 로 다른 도시에서도 뉴욕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만들어낼 수 있었겠지만 그 작 은 차이도 코폴라는 연출자로서 용인하고 타협하지 않은 것이다. 이 또한 끝까 지 스튜디오를 설득해 결국 뉴욕에서 모든 촬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세 번째, 가장 지난하고 처절한 싸움은 캐스팅에 관한 부분이었다. 배역에 맞 는 배우를 찾기 위해 코폴라는 수많은 횟수의 스크린 테스트를 실시하였고 그 에 따른 비용도 그만큼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얻으며 출중한 연기를 선보인 말론 브란도를 스튜디오 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캐스팅을 하였고 가장 극심한 대립을 보였던 마이클 콜 레오네 역에 모두의 반대와 우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신인 알 파치노의 잠재 성을 꿰뚫어 본 코폴라는 여러 차례의 스크린 테스트를 통해 우회적으로 스튜 디오를 설득해 결국 캐스팅에 이르게 하였다.
위에 열거한 대표적인 세 가지의 싸움 이후에도 코폴라는 촬영 기간 중 스튜 디오의 압박과 해고의 위협에 계속 시달리고 스텝의 불신과 싸우면서도 뚝심 있게 자신의 비전대로 끝까지 영화를 완성해 나갔다. 20)90

posted by 조현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