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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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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21. 18:40 황제를위하여 영화평론

2.6.2. 개선방향
물론 앞서 예를 들었던 <대부>와 <황제를 위하여>의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 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또한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개인에 대한 본 연 출자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맹목적인 존경심을 드러내기 위한 것도 아니다. 또 한 <대부>의 예처럼 제작사와 연출자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대립적인 관계로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제작사에게 연출 제의를 받은 한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보여준 연출 과정의 자세와 정신은 그 영 화의 결과를 떠나서 후대 감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난 단지 스토리를 말할 뿐이다. 스토리를 말할 수 없으면 일을 맡지 않는다.
설득당해서 만들고 싶지 않은 영화를 만들면 항상 후회한다”고 하워드 호크스 감독은 말했다.
“영화를 내면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6개월, 9개월, 12개월 동안 그 일에 매달려야 한다. 그 영화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편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육체노동에 배로 지치게 된다. 이 영화는 무엇에 대한 것인가? 무엇에 대한 것 인가에 따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정해지는 것이다.” 21)
영화의 본질을 내면화하는 것을 강조한 시드니 루멧 감독 말대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직접 그랬듯이 본 연출자는 좀 더 시간을 갖고 <황제를 위 하여>란 영화를 연출자로서 기획 포인트와 시나리오를 정밀히 분석하고 내 자 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내면화 과정에 더욱 충실했어야했다. 그런 확고한 내면 화를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신념과 비전을 확고히 할 수 있고 그에 따라 회사 와 스텝, 배우들을 설득해나가고 필요하면 끝까지 비전을 포기하지 않고 밀어 붙이는 뚝심과 배짱도 보였어야했다. 결코 말처럼 쉬운 과정은 아니다. 작가 로서의 욕심도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자본과 손실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듯이 둘 사이의 균형을 적적하게 찾아나간다는 것은 상업영화 감독에게 필요한 균형감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여건을 핑계로 안일하게 생각한 과정들이 있 었고 촬영에 임하는 과정에 있어 치열하지 못하고 상황과 여건에 타협한 채 지 나간 과정들도 많았다.
코폴라가 무명의 감독임으로 제작사의 입장에 맞게 쉽게 컨트롤 할 수 있을 거라는 스튜디오의 생각이 완전히 빗나가면서 연신 극한 대립의 상황이 만들어 지게 되고 감독 해고에 대한 극단적 논의를 계속 고려한 스튜디오였지만 코폴 라의 작품에 대한 뚝심과 비전을 어느 정도 그들도 공감했음으로 끝까지 코폴 라에게 감독직을 맡겼는지 모른다. 아마 중간에 해고해 버렸다면 지금의 <대부 >라는 걸작은 존재하지 않았듯이 자신들이 일단, 선임한 감독을 기다려주고 끝 까지 믿음을 지켜줄 수 있는 것도 영화 제작사의 큰 덕목이 아닐 까 생각한다.
전 감독의 해임으로 <황제를 위하여>의 연출직을 맡게 된 본 연출자의 자세 와 상황을 그렇게 만든 제작사의 입장도 영화 작품 자체의 질을 높이는 데에 대 해선 결코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92

 

 

posted by 조현정팀장
2015. 9. 21. 18:37 황제를위하여 영화평론

2.6. 연출과정의 진단과 평가
2.6.1. 한계와 문제점
한편의 영화가 머릿속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기획되고 제작되어 극장에 걸 리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은 위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여러 공정과 난관들을 넘 어서야 하는 고된 여정이다. <황제를 위하여>는 시작점부터 여러 한계와 문제 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원작이 가지고 있는 단점 즉, 진부함과 식상한 스토리로 인해 상업적 인 차별성과 신선함을 갖추지 못했고 이를 보완하지 못했다. 따라서 투자단계 에서 소모적인 시간들이 이어지게 되었고 결국 투자가 확정되었어도 투자여건 은 그만큼 열악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중심을 잡고 작품을 이끌고 나갈 주인의 부재였다. 물론 제작자가 기획 을 한 작품이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를 찾고 컨셉을 확립시킬 연출자가 제 작자와 의견 수렴을 이루지 못하고 교체됨으로 작품의 전체적인 방향성에 혼 란들이 가중되었다. 제작자가 아무리 작품의 방향성을 확고히 그리고 있다하 더라도 결국 현장에서 구현시키는 것은 연출자의 몫이다. 뒤늦게 합류한 본 연 출자도 제작자와는 시간에 쫓겨 작품의 방향성에 대해 서로 동상이몽을 꿈꾸 며 나중에 불협화음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셋째, 첫 번째 문제점의 결과였던 열악한 투자여건으로 인해 시나리오를 제 대로 구현할 수 없는 일정과 예산으로 일정 부분 졸속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 었던 촬영과정이다. 스텝과 배우들의 헌신으로 결국 무리한 일정과 예산임에 도 정해진 범위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완성은 되었지만 연출자의 입장에 서 봤을 때 좀 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작품의 퀄리티를 끌어올릴 수도 있었지만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다.
넷째, 결국 이렇게 완성된 결과물은 관객에게 보이기 전 이미 감독과 제작자 그 누구의 비전도 담지 못하고 만족시키지 못한 작품이 되었고 상업적인 계산 을 위해 오로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비주얼에만 몰두하게 되었으며 급기야 회사에서 작품의 편집에 관여를 하면서 관객에게 기본적으로 전달해야 할 스 토리마저 무너져 애매한 주제와 드라마의 작품이 되어버렸다.
앞서 필름누아르라는 장르를 살펴볼 때 수정느와르로 제시했었던 1972년 개 봉작 범죄 느와르 <대부>의 제작과정을 잠깐 살펴보겠다.
제니. M. 존스가 기록한 <대부, 시나리오&제작노트>의 내용을 요약해 보 면, 이 영화의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사의 제작담당 피터 파트는 “<대부>의 제 작과정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체험이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그것에 대 하여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 자체를 회피하고 싶었을 정도로요”라고 영화의 제 작과정에 대해서 회고한 바 있다. 그만큼 제작자로서 제작과정 중에 있었던 마 찰과 어려움들에 대해 토로 한 것이다.
<대부>란 영화의 기획은 <황제를 위하여>처럼 출발부터 여러 가지 난제를 안고 있었다. 당시 파산상태였던 작가 마리오 푸조는 전혀 쓰고 싶지 않은 소재 로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원작을 집필했고 어떠한 감독도(당시 12명의 감독이 대부의 연출을 고사했었다. 당시 무명이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저도 처 음에는 연출제의를 거절했었다) 이탈리아계 마피아들을 미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영화의 연출을 맡으려하지 않았다. 또한 상업적 수익을 전혀 장담할 수 없는 무명의 배우(특히 당시 무명에 가까운 알 파치노의 파격 캐스팅은 유명하 다)들이 대거 캐스팅이 되었고 그나마 주연이었던 말론 브란도는 박스오피스 기록에서는 이미 쇠락기었으며 제작사들에게는 그의 돌출행동 등으로 인해 기피인물로 찍혀있었다. 또한 영화가 크랭크 인 되기 전에 이탈리아계 미국인들 이 영화제작에 대한 반기를 들며 영화제작중단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였다.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악조건들 속에서 끝내 연출을 맡은 프란시스 포드 코 폴라는 결국 이 영화를 세기에 남는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는 눈부신 결과를 만 들어 냈다. “하위문화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스릴, 긴장감 높은 액션과 드라마 등이 흥미진진하게 짜여 져 있는 <대부>의 더욱 중요한 성공요인으로는 뛰어 난 연출적 디테일과 대서사시라는 영역과 가족이라는 친밀한 영역을 동시에 모 두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를 대서사시로 만든 것은 훌륭한 촬영과 빼 어난 연기, 그리고 전후 미국 자본주의의 성장에 대한 냉정한 코멘트들이다” 19)
라고 당대의 평론들은 극찬을 하였다

.
이런 눈부신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연출자 입장에서 들여 다본다면 위와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연출자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작품 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그에 따른 자신의 연출방향과 비전을 확실하게 세워놓 고 초지일관 그것을 관철시키고 작품에 투영시키기 위해 거대한 자본을 앞세 워 압력해오는 스튜디오에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대항하며 연출자로서의 외로운 싸움을 끊임없이 벌여나갔다.
그 과정은 첫 번째, 영화에 배당된 적은 예산에 안주하며 만족하지 않고 작품 의 퀄리티를 위해 끝까지 스튜디오를 설득해 나갔다는 것이다. 스튜디오는 예 산을 줄이기 위해 제작당시(1970년대)를 영화의 시대배경으로 삼으라고 지시 했지만 코폴라 감독은 영화 스토리의 대부분이 1940년대 배경과 밀접하게 연 결되어있다는 것을 이유로 1940년대를 영화의 배경으로 끝까지 밀어붙였다.
만약 1970년대의 배경을 가진 <대부>가 탄생됐었다면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대부>가 가지고 있는 품격과 고전적인 느낌, 당시 이민사회에 대한 리얼한 분위기의 미덕을 결코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로케이션에 대해서도 스튜디오는 예산을 문제로 영화노동조합의 세 력이 막강한 뉴욕이 아닌 다른 도시를 원했다. 하지만 코폴라 감독은 영화를 꼭 뉴욕에서 찍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일종의 시대극이고 뉴욕사회의 이민자 모습 과 분위기를 다른 도시에서는 똑같이 살릴 수 없다는 이유였다. 물론 영화적으 로 다른 도시에서도 뉴욕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만들어낼 수 있었겠지만 그 작 은 차이도 코폴라는 연출자로서 용인하고 타협하지 않은 것이다. 이 또한 끝까 지 스튜디오를 설득해 결국 뉴욕에서 모든 촬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세 번째, 가장 지난하고 처절한 싸움은 캐스팅에 관한 부분이었다. 배역에 맞 는 배우를 찾기 위해 코폴라는 수많은 횟수의 스크린 테스트를 실시하였고 그 에 따른 비용도 그만큼 계속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 수상의 영광을 얻으며 출중한 연기를 선보인 말론 브란도를 스튜디오 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캐스팅을 하였고 가장 극심한 대립을 보였던 마이클 콜 레오네 역에 모두의 반대와 우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신인 알 파치노의 잠재 성을 꿰뚫어 본 코폴라는 여러 차례의 스크린 테스트를 통해 우회적으로 스튜 디오를 설득해 결국 캐스팅에 이르게 하였다.
위에 열거한 대표적인 세 가지의 싸움 이후에도 코폴라는 촬영 기간 중 스튜 디오의 압박과 해고의 위협에 계속 시달리고 스텝의 불신과 싸우면서도 뚝심 있게 자신의 비전대로 끝까지 영화를 완성해 나갔다. 20)90

posted by 조현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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